독성기도도량 삼각산 삼성암

 

서울 강북구 대한불교 조계종 삼각산 나반도량 삼성암(일주문과주변의꽃)-1   2016-05-10 (화) 13:27
범심   13,533



일주문과산사의주변-1
촬영;범 심
삼성암 역사와유래)
주소;서울 강북구 수유1동
전화;02)988-1996~9300
삼성암은 북한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다. 행정구역상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에 있다. 화계사에서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한500미터쯤 북한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오르다 보면 장군처럼 버티고선 삼성암 일주문을 만날 수 있다.
 
삼성암은 여느 기도도량과는 달리 역사가 긴 편이 아니다. 고종 9년(1872)에 고상진(高尙鎭)이라는 거사가 창건했으니 이제 130여 년 남짓 법등을 이어왔을 뿐이다. 하지만 기도도량의 명성이 어디 역사에만 의지하는 것인가. 수많은 스님들과 선남선녀의 원력이 하나 둘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지 않는가.
 
삼성암의 청건 연기는 1943년에 태흡(泰洽) 스님이 폭우로 무너진삼성암을 중건하면서 지은〈화계사 삼성암 중건기(華溪寺 三聖庵 重建記)〉에 자세히 적혀 있다.〈중건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돼 있다.신도 박선묵(朴先默)은 16세에 발심하여 불교에 귀의하였다. 그는 한양의 신도 유성종, 서윤구, 고상진, 이원기, 장윤원, 유재호 등 7인과함께 고종 7년(1870) 봄에 화계사 뒤 천태굴(독성이 수도하던 곳이 남인도 천태산이다)에서 3일 동안 지성껏 독성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천태굴 아래 반석에서 잠깐 쉬게 되었다. 이때 박선묵이 고상진에게 말했다.“나 같은 범부의 눈으로 보더라도 이곳은 그윽하여 아주 빼어난 신령스런 구역이라 할 만합니다. 만약에 암자 하나를 지어 두셋 도반과틈을 내어 참배하며 때로는 기도하고 때로는 양성도 한다면 이 어찌대장부로서 통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암자를 짓자는 박선묵의 말에 고상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임신년(1872) 봄에 고상진이 몇 칸의 정사를 얽어 `소난야(小蘭若)'라는 현판을 걸고 부근의 산지를 사들여 사유로 삼았다. 박선묵은 고상진의 행동에 느낀 바 있어 10년 뒤인 신사년(1881)년에 독성각을 새로 짓고 절 이름을 지금의 삼성암으로 바꾸었다.” 이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삼성암은 박선목의 발의로 고상진이창건한 재가불자들의 소박한 수행도량이었다.
 
〈중건기〉에 보이는 `소난야'의 `난야'는 `아란야(阿蘭若)'의 준말로 사문이 수행하기 좋은공한처(空閑處), 즉 사원을 말한다.그런데 〈중건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삼성암은 천태굴이라는기도처를 기반으로 해서 창건된 사찰이다. 이와 관련해 진호 석연(震湖 錫淵) 스님은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도선 스님이 삼각산을 살펴보다가 암자 뒤에 있는석굴에 이르러 그 기이함을 매료되어 여러 달 동안 머물렀다. 이 때문에 후세에 일반인들이 스님의 자취를 추모하여 석굴에서 기도하거나 숨어 수행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때로는 암자터에 몇간의 초가집을 지었던 적도 있었는데, 어느 세월엔가 빈터가 되었다.”여기에서 말하는 석굴이 `천태굴'이다. 천태굴에서 도선 스님이 수행했다는 전설을 사실 그대로 믿기는 어렵겠지만 삼성암이 창건 이전부터 기도도량으로 유명했던 곳임을 말해주는 기록이라 할 것이다.삼성암은 창건 이후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소박한 기도도량으로 경영되었던 것 같다.
 
1936년 봄에 동운 스님이 칠성각과 요사채를 개축·수리하고 돌다리를 놓았는데, 〈중건기〉에 “이 때에 이르러 삼성암이 암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암은 암자로서의 면모를 갖춘지 몇 년 지나지 않아 홍수로 폐허가 되고 만다.1942년 7월의 일이었는데, 동이를 쏟아붓듯이 내린 비에 계곡물이넘쳐 휩쓸려 오는 흙과 돌에 절이 무너졌다. 태흡 스님은 이때의 상황을 〈중건기〉에 “맑은 밤이면 부처님의 이마 위로 별들이 빛나고 비오는 때면 신중탱화에 물이 흐르니 한갖 사람들만 슬퍼할 뿐만 아니라신들도 울었으며, 산이 찡그리고 시내가 울부짖기에 이르렀다”고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화계사 주지였던 회경(會鏡) 스님이 삼성암에 주석하던 중현(重玄)·성섭(性攝) 스님 등과 중건을 발원해 절을 일으킨다. 삼성암은1961년부터 성공·세민 스님의 노력으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됐다.이미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삼성암은 운문사 사리암과 함께 대표적인 독성기도도량이다.
 
독성(獨聖)은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도 한다. 나반존자는 부처님으로부터 혼자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수기를 받고 남인도천태산에서 혼자 도를 닦아 연각(緣覺)을 성취했기 때문에 `독성'이라고도 일컫는다. 독성은 말세 중생의 복덕을 위해 출현했기 때문에 복을 희구하는 신도들의 경배대상이 된다고 한다.
 
삼성암은 그 명성에 걸맞듯 기도 후 병을 고쳤다거나 아들을 낳았다거나 하는 등의 수많은 영험담이 전해오고 있다. 안팎 곱사등을 치료한 임수동씨의 영험담도 그 중의 하나다. 충남 공주에 미곡상을 하는 임선달이라는 사람에게는 수동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 병이 들어 곱사등이가 되었다. 임선달은 아들의 병을 고쳐주고자 이곳저곳 알아 보았지만 병이 깊어갈 뿐이었다.하루는 친척 중의 한 사람이 찾아와 “성현께 정성을 들여보는 것이어떻냐”고 권유해 삼성암에서 50일 간 독성기도를 드렸다.50일째 되던 날도 임수동은 밤 늦도록 나반존자를 부르며 기도를 드리다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한 소년이 찾아와 임수동을 어떤 노인에게 데리고 갔다. 노인은 넓은 반석 위에 앉아 색동옷을 입은 18명의동자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임수동이 절을 하자 장애인인 것을위로해 주며 소매 속에서 금과 은으로 만든 침을 꺼내 가슴과 등에 놓았다. 노인은 침을 놓은 후 “한달 후에는 병이 완쾌될 것이니 속히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임수동은 노인에게 무수히 예배하다 깨었는데, 이후로 매일 눈에 띌 정도로 몸이 자유로워져 한달 후에는 완전히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임수동이 나은 것을 보자 삼성암에 있던스님들과 대중들이 “부처님과 나반존자님의 위신력이 대단하다”며 찬탄했다.[법보신문 이창윤 기자]
주소;서울 강북구 수유1동
전화;02)988-1996~9300
삼성암은 북한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다. 행정구역상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에 있다. 화계사에서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한500미터쯤 북한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오르다 보면 장군처럼 버티고선 삼성암 일주문을 만날 수 있다.
 
삼성암은 여느 기도도량과는 달리 역사가 긴 편이 아니다. 고종 9년(1872)에 고상진(高尙鎭)이라는 거사가 창건했으니 이제 130여 년 남짓 법등을 이어왔을 뿐이다. 하지만 기도도량의 명성이 어디 역사에만 의지하는 것인가. 수많은 스님들과 선남선녀의 원력이 하나 둘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지 않는가.
 
삼성암의 청건 연기는 1943년에 태흡(泰洽) 스님이 폭우로 무너진삼성암을 중건하면서 지은〈화계사 삼성암 중건기(華溪寺 三聖庵 重建記)〉에 자세히 적혀 있다.〈중건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돼 있다.신도 박선묵(朴先默)은 16세에 발심하여 불교에 귀의하였다. 그는 한양의 신도 유성종, 서윤구, 고상진, 이원기, 장윤원, 유재호 등 7인과함께 고종 7년(1870) 봄에 화계사 뒤 천태굴(독성이 수도하던 곳이 남인도 천태산이다)에서 3일 동안 지성껏 독성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천태굴 아래 반석에서 잠깐 쉬게 되었다. 이때 박선묵이 고상진에게 말했다.“나 같은 범부의 눈으로 보더라도 이곳은 그윽하여 아주 빼어난 신령스런 구역이라 할 만합니다. 만약에 암자 하나를 지어 두셋 도반과틈을 내어 참배하며 때로는 기도하고 때로는 양성도 한다면 이 어찌대장부로서 통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암자를 짓자는 박선묵의 말에 고상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임신년(1872) 봄에 고상진이 몇 칸의 정사를 얽어 `소난야(小蘭若)'라는 현판을 걸고 부근의 산지를 사들여 사유로 삼았다. 박선묵은 고상진의 행동에 느낀 바 있어 10년 뒤인 신사년(1881)년에 독성각을 새로 짓고 절 이름을 지금의 삼성암으로 바꾸었다.” 이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삼성암은 박선목의 발의로 고상진이창건한 재가불자들의 소박한 수행도량이었다.
 
〈중건기〉에 보이는 `소난야'의 `난야'는 `아란야(阿蘭若)'의 준말로 사문이 수행하기 좋은공한처(空閑處), 즉 사원을 말한다.그런데 〈중건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삼성암은 천태굴이라는기도처를 기반으로 해서 창건된 사찰이다. 이와 관련해 진호 석연(震湖 錫淵) 스님은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도선 스님이 삼각산을 살펴보다가 암자 뒤에 있는석굴에 이르러 그 기이함을 매료되어 여러 달 동안 머물렀다. 이 때문에 후세에 일반인들이 스님의 자취를 추모하여 석굴에서 기도하거나 숨어 수행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때로는 암자터에 몇간의 초가집을 지었던 적도 있었는데, 어느 세월엔가 빈터가 되었다.”여기에서 말하는 석굴이 `천태굴'이다. 천태굴에서 도선 스님이 수행했다는 전설을 사실 그대로 믿기는 어렵겠지만 삼성암이 창건 이전부터 기도도량으로 유명했던 곳임을 말해주는 기록이라 할 것이다.삼성암은 창건 이후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소박한 기도도량으로 경영되었던 것 같다.
 
1936년 봄에 동운 스님이 칠성각과 요사채를 개축·수리하고 돌다리를 놓았는데, 〈중건기〉에 “이 때에 이르러 삼성암이 암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암은 암자로서의 면모를 갖춘지 몇 년 지나지 않아 홍수로 폐허가 되고 만다.1942년 7월의 일이었는데, 동이를 쏟아붓듯이 내린 비에 계곡물이넘쳐 휩쓸려 오는 흙과 돌에 절이 무너졌다. 태흡 스님은 이때의 상황을 〈중건기〉에 “맑은 밤이면 부처님의 이마 위로 별들이 빛나고 비오는 때면 신중탱화에 물이 흐르니 한갖 사람들만 슬퍼할 뿐만 아니라신들도 울었으며, 산이 찡그리고 시내가 울부짖기에 이르렀다”고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화계사 주지였던 회경(會鏡) 스님이 삼성암에 주석하던 중현(重玄)·성섭(性攝) 스님 등과 중건을 발원해 절을 일으킨다. 삼성암은1961년부터 성공·세민 스님의 노력으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됐다.이미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삼성암은 운문사 사리암과 함께 대표적인 독성기도도량이다.
 
독성(獨聖)은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도 한다. 나반존자는 부처님으로부터 혼자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수기를 받고 남인도천태산에서 혼자 도를 닦아 연각(緣覺)을 성취했기 때문에 `독성'이라고도 일컫는다. 독성은 말세 중생의 복덕을 위해 출현했기 때문에 복을 희구하는 신도들의 경배대상이 된다고 한다.
 
삼성암은 그 명성에 걸맞듯 기도 후 병을 고쳤다거나 아들을 낳았다거나 하는 등의 수많은 영험담이 전해오고 있다. 안팎 곱사등을 치료한 임수동씨의 영험담도 그 중의 하나다. 충남 공주에 미곡상을 하는 임선달이라는 사람에게는 수동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 병이 들어 곱사등이가 되었다. 임선달은 아들의 병을 고쳐주고자 이곳저곳 알아 보았지만 병이 깊어갈 뿐이었다.하루는 친척 중의 한 사람이 찾아와 “성현께 정성을 들여보는 것이어떻냐”고 권유해 삼성암에서 50일 간 독성기도를 드렸다.50일째 되던 날도 임수동은 밤 늦도록 나반존자를 부르며 기도를 드리다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한 소년이 찾아와 임수동을 어떤 노인에게 데리고 갔다. 노인은 넓은 반석 위에 앉아 색동옷을 입은 18명의동자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임수동이 절을 하자 장애인인 것을위로해 주며 소매 속에서 금과 은으로 만든 침을 꺼내 가슴과 등에 놓았다. 노인은 침을 놓은 후 “한달 후에는 병이 완쾌될 것이니 속히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임수동은 노인에게 무수히 예배하다 깨었는데, 이후로 매일 눈에 띌 정도로 몸이 자유로워져 한달 후에는 완전히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임수동이 나은 것을 보자 삼성암에 있던스님들과 대중들이 “부처님과 나반존자님의 위신력이 대단하다”며 찬탄했다.[법보신문 이창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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