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저녁,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선승이자 대중을 위한 법문으로 명성이 높은 고우스님(조계종 원로위원)과 탁발순례등 생명평화운동을 펼쳐온 '길 위의 수행자' 도법스님(조계종 자성과 쇄신결사추진본부장)이 특별한 '야단법석'을 열었다.
26일 오후7시 조계사 '도심포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도법스님이 묻고 고우스님이 답하는 형식의 '즉문즉설'로 진행된 이 야단법석의 주제는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한국불교가 안고있는 문제점을 숨김없이 드러내면서 한국사회의 고통과 갈등에 대한 불교적 해법을 듣기 위해 자성과 쇄신결사추진본부가 마련한 '세상 속 선문답'의 자리였다.
도법스님 : 깨달음만이 인생의 해답이라는 믿음으로 스무살 때부터 마흔살까지 참선에 골몰했다. 깨달음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심각한 회의와 좌절감을 안고 선원을 떠나기도 했다.
고우스님 : 대만의 한 청년이 고위공직자가 됐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대만을 바꾸겠다고 1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2년차에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면서 보냈다. 3년차에는 포기하고 되는대로 살기로 했다.
고위직에 있다보니 금방 부정부패에 물들었다. 그 2년차가 중요하다. 처음 출가를 해서 용맹정진하다가 뜻대로 안되니 고민을 하게 된다. 상향된 2년차는 고민을 버리지 않은다. 하향된 2년차는 포기하고 그냥 3년차가 된다. 스님들 중에 그런 '3년차'로 간 분들이 상당히 많다. 도법스님 질문대로라면 상향된 2년차다. 하향 2년차가 안 된 것이 다행이다.
도법스님 : 금오, 성철, 서옹 등 깨달은 도인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면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솔직히 깨달은 도인의 모습이 그런 정도라면 굳이 특별하게 출가, 깨달음을 추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고우스님 : 나도 선방에서 오랫동안 있었다. 나는 성철스님의 밸일법문이라는 안내문을 가지고 공부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료라고 하는데 뭘 깨닫는가. 존재원리다. 모든 존재는 중도(中道)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도법스님 : 금오스님은 은사스님이다.
성철스님, 서옹스님도 직접 모셨다. 20대에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을 들었다. 그분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가진 도인의 상과는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고우스님 : 동감이다. 큰스님이라고 해서 찾아가 보니 화를 내고, 제자들과도 다투더라. 그러나 나중에는 실망했던 부분이 없어졌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이 전부는 아니다.
도법스님 : 초기 경전에서 보면 불교의 목적이 이고득락(離苦得樂- 고통을 버리고 기쁨을 얻어 해탈의 경지에 이름)이라고 했다. 뭇 중생의 평화와 행복은 무엇인가.
고우스님 : 자기를 바로 봐야 한다. 그 답이 중도다. 새끼, 짚신, 가마니는 모양과 쓰임새가 다 다르다. 하지만 그 재료는 딱 하나, 짚이다. 그게 본질이다. '나'가 있다고 전제하면 현상만 보는 것이다. 남과 나, 남녀, 인종, 종교가 다 나뉘어 있는 것 같지만 본질은 하나다. 거기에는 좋다 나쁘다, 크다 작다의 대립과 차별이 없다. 중도란 '나'라는 편견에서 탈피해 모든 존재가 부처님 임을 아는 것이다. 우린 모두가 부처다. 불교 때문에 종교전쟁이 일어난 적은 한번도 없다. 발상지인 인도에서도 이슬람, 힌두교에 밀려났다. 다른 종교도 중도로 보기에 대립이 없다. 그렇다고 불법이 끊겼는가. 개개인도 그렇지만 지구상 곳곳에 갈등과 대립이 있다. 불교가 더욱 필요한 시대다.
도법스님 : 경전에서는 깨달음에 특별한 수행이 강조되고 있지 않다. 깨달음은 신비체험과 관계없이 현실타당한 해탈의 길임을 이해하고 확신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고우스님 : 깨달음은 사람마다 다양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을 바탕으로 깨달음으로 가는 것이 맞는 것 같아. 어떤 사람은 엘리베이터 타고 휙 올라가고, 어떤 이는 층마다 서고, 아예 처음부터 게단을 걸어오르기도 한다.
올라간다는 것은 마음을 정화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어렵고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올라간 만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무아와 공을 이해하고 실천하면 지혜가 생긴다. 노사 간에도 노조는 회사를 은인으로, 회사는 직원을 은인으로 생각하면 문제가 풀린다. 직원 때문에 돈 버니 은인이고, 회사 때문에 아이들 공부시키니 은인 아닌가.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는 사회에서 말하는 긍정적 사고와는 비교가 안된다.
불교는 절대긍정이다.
고우스님은 "우리사회가 아직도 과거의 양극화를 못버렸다" 며 "지금 개개인, 사회, 종교, 국가 모두가 중도가 절실히 필요한 시가"라고 강조했다.
(2012년 9월 28일 경향신문에서.....)